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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예술

후원 진단과 전망

저자
글_김진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 위원•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발행일
2025-12-24

예술 가치와 예술 후원이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년 11월과 12월, 조금 더 연장하면 이듬해 1월까지 국가 예술 지원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은 이른바 ‘사업 시즌’이 펼쳐진다. 공공지원에 목마른 수많은 예술 단체와 예술가들이 지원 신청이라는 절차를 통해 한해 예술 사업을 공모하고 있는 예술 지원 기관의 문을 두드려야 하고, 기관들은 심의 또는 심사라는 형식으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공모 사업에 선정된 예술단체는 남다른 각오로 작품 제작을 준비하겠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 단체는 또다른 공공지원 영역을 기웃거리면서 ‘플랜B’ 가동을 서두르게 마련이다. 

사업 심의를 통과한 예술단체나 그렇지 못한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는 ‘공공지원 의존’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적 재원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예술 생태계의 모습은 이 글의 핵심 논의인 문화예술 후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예술계 스타의 기부와 예술 후원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탄탄한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예술인이 기부의 형태로 자신의 활동 무대와 예술 생태계에 다시 힘을 보태는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 몸담아온 예술 장르와 예술 현장을 다음 세대와 공유하려는 시도이자, 단순한 기부를 넘어 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고민하는 행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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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배우와 박근형 배우가 참여한 <연극내일 프로젝트> 포스터 (좌측) / 올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최호종 무용수 (좌측)

 

대표적으론 신구 배우와 박근형 배우가 의기 투합해 만든 특별공연의 티켓 수익금 전액을 청년 연극인 지원을 위해 조성된 '연금내일기금'에 기부한 사례가 있다. 01두 원로배우의 이같은 결정을 일회성 단순 기부로 판단해선 곤란하다. 연극 장르가 다음 세대에 중단없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마중물 같은 역할이며, 동시에 '연금내일기금'이라는 제도의 중요성과 의미를 설파하는 의미도 지닌다.

무용계의 아이돌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최호종 역시 기부의 실천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수여하는 올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그는 수상 상금을 예술후원 캠페인 예술나무운동’에 쾌척했다. 자신이 이룬 예술적 성과와 대중적 관심에 대한 보상을 예술 기부를 통해 동시대 예술가와 예술 환경 전반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환원한 측면을 지닌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등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계 스타의 기부가 보편적이라고 보긴 어렵지만두 사례의 시사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예술 현장의 가치 확산과 그것의 지속성을 위해 자발적 후원에 나섰다는 지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예술인 기부 실천 동력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향후 문화예술 후원 담론 형성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예술 후원 제도의 출발과 주요 체계
국내 예술 분야 후원은 대체로 세 가지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첫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에 의한 기부금 모금 등 후원 유치 활동이고, 두 번째는 ‘메세나’로 통칭되는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며, 세 번째는 예술 기관과 예술 단체 등 예술 조직의 자발적 후원 유치 활동으로 모아진다. 사실 국내 예술 후원의 정책적 접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문화예술가치 확산 사업이 효시라고 볼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 기부금 모금의 역사는 예술위 전신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탄생한 1973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2005년 예술위 체제 전환 이후 전담 부서가 신설되면서 본격화한 측면이 있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인식 제고’, ‘예술 가치의 사회적 인식 확산’ 등의 이름으로 추진되어 온 예술위의 예술 가치 확산 사업은 기업이나 개인 등 민간의 예술 후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책 기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 틀을 토대로 조건부(지정) 기부금 지원 사업, 아르코 크라우드 매칭 지원 사업, 예술나무운동, 문화예술 후원 매개 인력 양성 사업 등 다양한 후원 사업이 펼쳐졌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 52년 동안 총 4,0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금해 예술 현장을 지원하는 후원의 성과를 낸 것은 고무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기관의 고유 목적 사업인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한 지원 사업과 공연장 및 전시장 등 시설 운영 관리에 집중하던 지역 문화재단도 2010년 초반 이후부터 기부금 유입 확대를 위한 재원 조성 활동과 지역 예술 단체 지원 확대에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이다. 100개가 넘는 지역 문화재단이 세제 적격 단체가 되어 기부금을 모금하는 예술 후원 활동에 나서면서 2016년 이후 연평균 8%대의 기부금 유입 증가율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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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예술 후원의 명암 

예술 후원의 또 다른 한 축인 기업의 예술 분야 후원은 사회공헌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메세나 기구인 한국메세나협회와 개별 기업, 기업 문화재단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기업의 예술 후원은 2011년 이후 매년 증가세를 보이다가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2020년 급감한 이후 2022년부터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 후원과 관련한 기업의 긍정적인 흐름의 이면도 놓쳐선 안 된다고 본다. 기업의 예술 지원 규모의 총량은 증가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개선의 여지를 남긴다. 예컨대 예술 지원 장르별로 보면 기업이 소유하거나 기업 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공연장과 미술관 등 인프라 운영에 들어가는 예산이 전체 규모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02이러한 결과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소유한 문화시설 운영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예술 장르별 지원 비중을 보면 미술·전시(15%), 클래식 음악 (8.1%), 문화예술교육(6.5%)에 비해 국악·전통예술(2%), 문학(1.3%), 연극(1.1%), 무용(0.3%) 등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수준이다. 이것은 예술 후원 체계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기업 메세나가 미술과 음악 등 특정 장르 지원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으로, 장르별 균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4년 실시한 민간 공익법인(기업 문화재단) 문화예술 후원 현황 조사03는 향후 기업의 예술 후원 방향성 설정에 시사점을 던진다고 볼 수 있다. 즉 개별 기업이 직접 나서 인프라 지원 등에 치중한 사업을 하기 보다는 비영리 공익법인인 기업 문화재단을 활용해 다양한 장르에 걸쳐 예술 후원 활동을 보다 균형성 있는 방향으로 강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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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조직이 깨어나야

어떻게 보면 개별 예술 기관이나 예술 단체 같은 예술 조직이야말로 민간 기부의 직접적 수혜자로서 예술 후원을 유치하기 위한 재원 조성 활동이 절박한 상황이지만, 자체 후원회를 갖춰 놓고 본격적으로 개인 및 기업 대상의 기부금 모금에 나서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공공예술 기관 중에서는 후원 유치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전담 부서를 설치한 세종문화회관의 사례가 비교적 두드러진다. 제작극장을 겸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2014년 조직 개편에 따라 재원조성TF를 문화재원팀으로 직제 편성하면서 국·공립 공연장 중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외부 후원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했다. 이 같은 결정은 당시 예술 기관의 후원 유치가 예술 정책의 주요한 담론 중 하나로 논의되는 분위기와 맞물려 예술계 전반의 주목을 받은 측면이 있으나, 다른 예술 조직으로 확산되는 효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국립극장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립 문화예술 기관들이 자체 후원회 운영 등을 목적으로 재단법인 형태 등 별도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현상은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04
관건은 공공공연장 등 일부 국·공립 예술 조직을 제외한 상당수 예술 단체가 적극적인 후원 유치 활동으로 재원 확보 노력을 하기보다는 공공지원에 여전히 기대고 있는 흐름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본다. 실제로 예술 단체 스스로 민간 후원금을 모금 하는 정책적 자구 방안은 매우 미미한 수준임이 관련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다. 전문예술 법인·단체 백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문화예술 단체의 재원 조성 현황을 보면, 총 수입 중 공공지원금 비중이 82.6%로 압도적으로 높고, 자체 수입은 16.1%, 기부금은 1.3%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치는 전문예술법인·단체 수입에서 기부금 같은 예술 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2%도 채 안 된다는 의미로, 예술조직 대부분이 공공재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이쯤 되면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구축효과’ 이론05을 예술 단체 재원 조성 등 후원 관련 논의에도 적용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비영리 예술 조직에 대한 공공의 재정 지원이 오히려 민간의 자발적 기부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고, 예술 후원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결과로 나타나게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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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후원이 보편화한 사회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문화예술의 다양한 편익과 순기능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이를 예술의 가치 확산 ‘징조’라고 판단할 수 있다면, 예술 후원으로 이어지는 동력이 되어야 하고, 예술 조직은 이를 바탕으로 공공지원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기부 유치 등 재원 조성 활동을 본격화하는 게 타당하겠지만, 현실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내 기부분야 순위만 보더라도, 문화예술은 다른 분야에 비해 정체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기준 기부 분야 순위는 자선단체, 해외구호, 시민단체, 지역사회, 의료, 교육, 문화예술 등 순으로, 문화예술은 대상 분야 중 가장 낮은 순위를 보인다.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는 개인 기부가 2% 미만06기업 기부는 4%대07로 각각 나타나 있는데, 이는 민간에게 문화예술 분야가 가치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기부의 영역으로는 사실상 수용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예술가치에 대한 긍정적 판단과 실제 기부는 별개라는 일종의 ‘인식 괴리’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우리나라는 오랜 예술 후원 제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가치와 후원이 동행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관계가 아닌 분리된 관계로 기능하고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처방이 내려져야 예술 후원이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아 모든 문화예술의 기초가 되는 순수예술의 안정적 운영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의 일단은 ‘예술 가치와 예술 후원은 동일체’라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예술기관 및 예술단체 등 예술 조직이 예술 후원의 주체나 마찬가지인 개인과 기업 등 민간에 적극적으로 기부 동기를 제공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본다. 예술 후원은 기부를 할 수 있는 동기와 환경부터 구체적이고 정치하게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참고문헌
김경욱(2011), 문화정책과 재원조성 김진각(2024), 문화예술후원론:메디치에서 아미까지 문화체육관광부•예술경영지원센터(2012), 해외공연의 국세조세 해설집 한국문화관광연구원(2019), 예술의 가치와 영향 연구: 국내외 담론과 주요 연구결과 분석 Abrams, B. A., & Schitz, M. D.(1978), The crowding-out effect of governmental transfers on private charitable contributions Carnwath, J. D.,& Brown, A. S.(2014), Understanding the value and impacts of cultural experiences: A literature review Giddens, A.(1984), The constitution of society outline of the theory of structuration

 

김진각
김진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 위원•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아메리칸대(AU) 아시아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부와 공공기관의 문화예술 관련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한국동북아학회 부회장과 한국대중문화예술학회, 한국지역문화학회 편집위원을 각각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문화예술지원론: 체계와 쟁점>(2021), <문화예술산업 총론: 창조예술과 편집예술 산업의 이해>(2022), <문화예술후원론: 메디치에서 아미까지>(2024), <AI와 대중예술 산업>(2025) 등이 있다. ‘문화예술지원기관의 역할 정립 방안 연구: 합의제 기구 전환 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중심으로’(2020), ‘문화콘텐츠 기업 문화재단의 예술지원 차별적 특성 연구: CJ 문화재단을 중심으로’(2022) 등의 KCI 등재학술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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